위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.
클리엔텔라와 파트로누스, 혹은 호스트들 사이의 보수는 원칙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으
며, 상대방의 지위나 재산 등에 따라 결정되었다,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자신의 보호 아래에
있는 협력자들을 더 많이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. 또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
공과 사를 막론하고 많은 돈을 내야 했는데, 특히 공적으로는 부담이 컸다. 클리엔텔라 관
계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에베르게티즘이라는 신의의 원칙으로서, 그것은 로마와 제국 내
모든 도시들의 사회적, 정치적 중추의 역할을 했다. 유력인사들은 자신들을 지지해 주는 도
시들에 많은 반대급부를 약속하고 제공했다. 서커스의 유치, 연회, 대중 목욕탕의 무상이용
공공건물의 설립이나 보수, 로마로 보내는 전령의 비용 부담 등, 이들이 자신의 명예나 지위
를 지키기 위해 치르는 대가의 명목은 수없이 많았다. 그 대신 이 유력인사들은 최고의 지
이러한 상호의존은 일종의 사회적 의무와도 같았다. 약속이
좀 늦게 이행되더라도,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상대방에게 해주어야 할 일을 명백
히 인식하고 있을 정도로 사회적인 규범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. 또 당사자가 사망하는 경
우에는 후손에게 의무가 대물림되었다. 이런 엄격한 관계를 통해, 우리는 자유에 대한 요구
와는 별도로 로마 시민과 도시국가의 삶은 상당부분이 고대사회의 상호의존 법칙에 의해 규
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.
로마는 그리스로부터 부분적으로 이어받은 도시국가의 모델을 보전하고 확산시켰다. 로
마를 거치면서 비로소 도시국가는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, 오늘날의 법치국가들이 원형으로
삼는 법률의 원칙들을 만들어낸다. 500여 년 동안의 변화를 거치면서 라티움의 도시국가
로마는 모든 자유인의 조국이 된 것이다.
제3장
도시국가의 세계
도시국가의 체제 내에서 살던 사람들과 그밖의 사람들, 즉 그리스 로마인들이 야만인이라
고 생각한 사람들 사이에는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. 로마인들의 고유
한 특징이야 제쳐두고라도 사실상 로마는 BC 7세기경부터 지중해를 중심으로 태동한 도시
국가의 일원이었다. 따라서 로마인들이 당시의 다른 도시(그리스 국가들이나 카르타고)와
유사한 사회생활을 꾸려나갔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. 즉 로마인들은 집단의 이익
을 놓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공동으로 결정을 내렸다. 로마가 세계를 정복함으로써 수많은
도시국가와 그들의 연방이 파괴되었지만, 한편으로는 도시국가의 행정적, 정치적 모델이 널
리 보급되고 보다 공고해졌다. 로마 제국은 하나의 모자이크와도 같았다. 로마라는 최고
권력 밑에 위상과 자율권의 정도가 저마다 다른 도시국가들이 모여 있는, 하나의 집합체였
던 것이다.
시민이 하는 일
자유 로마인은 시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. 시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
람은 야만인 취급을 받았다.
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라 시비타스, 즉 도시국가의 성원이 시민 전체가 최고의 권위를 가지
고 있었다. 그들은 자유를 누렸으며 선거에 참여하고 법을 만들고 판결을 내리는 등, 시민
의 자격으로 다양한 "일"을 했다. 로마를 공간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나의 중심도시와 그 밖
의 영토로 이루어진 도시국가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. 그러나 로마라는 세계는 수많
은 도시국가와 일부 로마인, 그리고 대다수의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복합체였다.